본 필자가 리눅스, 유닉스 개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고지식한 척 글을 쓰다가 갑자기 쌩뚱 맞게 외계인 음모론을 써갈겨 배포 하는 것에 대해 다들
좀 아이러니 하실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글 은 어그로 이며,


어그로를 끄는 이유는 당연히 블로그 방문 손님과 구독자 수를 높이기 위함 이겠죠.


자 아셨으면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미국식 개그)



먼저, 프로그래밍 처럼 변수를 정하죠.


여기서 제가 말하는 외계인 이란, 인류의 문명을 훨씬 뛰어 넘은 좀 더 높은 차원으로의 이동을 꾀하여 우주를 유영하는 인류보다 훨씬 앞서나간 '선각자들' 을 말합니다.


외계인 = 선각자


사실 '선각자' 라는 말도 솔직히 말해서 제가 거창한척 게임을 참고해서 지은 거죠.


전문 게이머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선각자' 라는 단어는 게임 '헤일로' 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입니다.



그 선각자들은 한 종이 아닐수 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종 도 있을 것이고 많이 알려진 것처럼 '그레이' 외계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 그들은 이 지구를 방문 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어쩌면 지구의 태생이 아니라 그들의 종 중 후손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쩌면....... 우리가 원래 그들 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진화론은 맞지만 이 '지구'에서 인류가 자체적으로 침팬치로부터 진화하여 등장 하려면 아직 '수 만년' 가까이 남았다고 저는 개인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어쩌면, 우리 인류는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있다 가는 '망각한 선각자들' 일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정황증거를 댄다면 문명을 발빠르게 성장함과 동시에 오랜 역사 때부터 집착하듯 우주를 동경하고 관찰하고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억으로부터의 본능이 아닌가 하는 것,



두번째 정황증거는 바로 '종교' 입니다.


왜 인류는 아주 오래전 부터 종교에 집착하는가?


동물들은 종교 같은 것을 가지지 않습니다.


동물이 인류처럼 진화하여 종교를 가지기 까지는 최소 1억년 이하 가 걸릴수 있다고 봅니다.


즉 인류처럼 진화하고서도 우주 개발에 돌입하고도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을때 라고 봅니다.


즉 하고 싶은 말은 인류처럼 문명에 따라 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종교를 갖는 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심 속에 신앙을 가질수 있겠지만 확신이 없기 때문에 구체화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인류가 종교에 가장 먼저 집착 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 수많은 우주에 대한 개발과 우주 속 심연의 지식 습득으로 인해 그 중요한 사실을 알고 깨달았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우선 첫째로 여기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까지는 제 생각 입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20세기 중반 부터 외계인과 UFO가 자주 출몰하는 결정적인 이유에 대하여 추론해 보겠습니다.



20세기 초, 중반 부터 외계인 음모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대부분 '그레이' 형태의 외계인들 입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눈, 코입 머리 모양, 전체적 생김새 등 우리와 심하게 다릅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도 우주 유영에 쪄들어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유전자도 있을수 있겠지만 인류와 다른 종 즉 같은 조상을 두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왜 그때부터 이 지구에 집착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일수도 있습니다.


20세기는 초, 중반은 격동의 세월 이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계실 겁니다.


세계대전, 핵실험, 핵전쟁, 많은 나라들의 구속과 독립, 내전과 냉전, 종교 전쟁의 촉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핵무기' 입니다.


그리고 '핵실험' 일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최초 맨하튼 프로젝트로 촉발되었던1945년 7월에 시행한 핵실험인 트리니티 핵실험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합니다.


즉 핵실험을 통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에너지가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로 퍼져나가 그들에게 포착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주의 한 작은 구석에 있는 지구에서 숨죽이고 있던 우리 인류는 그들에게 그 이후로 포착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이후로 그들은 집중적으로 감시 및 관찰 그리고 관리 까지 '오지라펴' 역을 톡톡히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리를 공식적으로 조우 하지 않고 관찰 및 감시를 하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우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며


곧 그것은 적군도 아군도 아니라는 것이며 언제든지 그들과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러한 발상은 매우 무서운 생각이죠.


또 다른 선각자인 그들로부터 우리가 안전 하려면 어쩌면 먼저 그들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이해 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또 다른 선각자가 있을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 인데도 불구하고


"외계인은 무조건 없다."


"중2병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라며 타인에게 설교 하는 것 이야 말로 매우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전부 거짓이며 현재 아직 다른 선각자들을 전혀 마주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염두에 두어야 함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뻘글 읽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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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 에서 clipman 소프트웨어 소개와 설치를 이야기 했다.


그래서 더욱 거기에 가미를 더하여 clipman의 내부 캐쉬의 보안 설정을 가이드 하려고 한다.


저장되는 캐쉬 데이터는 '/home/user/.cache/xfce4/clipmand/textsrc'로 저장 되는데
보통 이 파일의 권한은 'rw-rw-r'(664) 이지만 만약 이 보안설정이 불안 하다면 직접적으로 'rw-rw-'(660) 으로 바꾸어 주면 된다.


// 먼저 xfce4-clipman 소프트웨어 의 cache 폴더로 진입한다.


cd ~/.cache/xfce4/clipman


// 'textsrc' 파일이 있는지 확인한다.


ls


// 해당 파일의 보안 권한을 변경한다. < 'rw-rw-'= (660) > 


    chmod 660 textsrc


-- 이로써 보안을 한층 더 강화 시킨다.




 이렇게 해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리눅스를 PC에 직접적으로 설치 하기 위해서는 Live cd를 만들어 주거나 Live usb를 만들어 줘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dvd라고 할 지라도 Live cd로의 제작은 Live cd 부팅시 상당히 느릴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만들 것이라면 Live usb를 선택하는 것을 강력 추천하는 바 이다.

먼저 Live usb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해야할 몇가지 필요물들을 나열 하자면

준비물

(1) 제작할 usb (8GB 이상 권장)

(1) 제작툴인 rufus

(2) 리눅스 이미지 : Linux_ubuntu_16.04 (되도록 아직까지는 패키지 호환성 문제로 15.10-wily 이하를 추천 한다.)
 
이 세가지만 있다면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자.

1. 제작할 USB를 PC에 꽂는다.
 
2. RUFUS를 실행한다.

3. rufus에서 usb가 인식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먼저 포맷할 필요는 없다. = 물론 이전에 로우 포맷을 한다면 부팅시 진행이 더욱 빨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4. rufus에서 다운로드 받은 이미지를 불러온다.

5. 포맷 파티션등이 자동으로 설정 된 것을 확인후 제작에 들어간다.


가이드 영상




리눅스는 많이 들었겠지만 아직 걸치 뿐만이 아니라 시작도 못한 초보자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굳이 리눅스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훗날 당신의 원할한 비즈니스(서버 구축, 디자이너, 게임 메이커, writer,웹 설계사등)를 위해서 라면 리눅스를 접해 보는 것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그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간편하게 바로 오픈소스로 소프트웨어로써 설치하고 사용 할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윈도우즈에도 리눅스의 유닉스 시스템을 간접적으로 구현하는 명령형 프롬프트 셸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리눅스의 진정한 면과 BASH의 효율성을 제대로 구현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또 뿐만 아니라 VMWARE VIRTUALBOX 와 같은 가상 머신에 리눅스를 설치해서 가상적으로 리눅스를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 이지만 그러한 방법도 리눅스 시스템을 전부 체감 하기란 어렵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리눅스 체험 방법은 당신의 PC 시스템에 직접 리눅스를 설치하여 해 보는 것이 최고라고 본 필자는 말하고 싶다.

먼저 당신의 PC에 윈도우즈가 설치 되어 있다 해도 뿐만 아니라 하드 디스크 분할을 따로 해놓지 않은 상황 이라 해도 리눅스 설치에서 제공하는 'UBIQUITY 설치 시스템'은 그러한 파티션 분할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도록 리눅스 배포판 자체에서 서비스 툴을 전부 제공 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다른 각개의 하드디스크에 리눅스를 따로 설치하는 것도 가장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드디스크의 한 개일 경우 리눅스의 설치 관리자의 가이드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 하다.

물론 각가의 운영체제가 설치된 하드디스크가 달라도 듀얼 부팅을 구성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부트 로더를 같게 해준다면)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윈도우가 설치된 pc에 같은 하디디스크에 리눅스를 설치 하는 방법으 배워 보도록 하자.

※ 단, (윈도우, 안드로이드 듀얼 태블릿 pc) 나 윈도우 10 pc 에서는 테스를 해보지 않은 방법 입니다.
<윈도우즈 10 pc에서의 리눅스 설치는 이후에 포스팅 예정>


1. 먼저 리눅스 live가 탑재 되어 있는 usb를 컴퓨터에 꼽고 재부팅 한다.

    (1) usb 부팅이 자동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부트 메뉴] 나 [cmos 셋업 - 보통 del키.] 로 들어가서 usb로 부팅 되겠끔 구성한다.

    (2) usb 부팅이 제대로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그루브 메뉴가 뜰 것이다.

    (3) 그루브 메뉴는 보통 해당 리눅스의 live 체험 환경으로 진입하는 것과 세이프 그래픽 모드 그리고 인스톨 모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 그 중 바로 인스톨 모드로 진입한다.

3. 그렇게 되면 설치 gui가 뜨게 되고 언어를 선택하고 리눅스 설치로 진입한다.

4. 다음은 '설치 중 업데이트 다운로드'나 '서드 파티 소프트웨어 설치'가 뜨게 되는데 이는 저작권이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사용자 스스로가 설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5. 설치 방법에 대해 문의 하는데 가장 간편하게 '윈도우즈를 그대로 놔두고 설치 하기' 를 선택한다. 이는 윈도우와 리눅스의 듀얼 부팅 체제 구성을 의미한다.




6. 이번 설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윈도우가 설치된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설치 할 경우 하드디스크를 분할 할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1) 여기에서 절대로 윈도우즈가 설치된 하드디스크의 현재 용량에 정확히 맞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잘못하면 윈도우가 설치된 파티션 부팅이 오류가 발생할수 있다.)


      (1) * 즉 양쪽 다 충분히 여분 용량을 고려 하여 나누어야 마땅하다. (리눅스는 최소 30GB 이상을 줄 수 있도록 하자.)


      (1) * 가이드 유튜브 영상에서 보여지는 용량 크기는 가상머신에서 테스트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게의치 않도록 주의 한다.

7. 다음은 시간 설정을 위한 지역 전역 설정을 하자. 그냥 한국이면 seoul을 선택 하면 된다.

8. 다음은 키보드의 언어 설정을 하도록 한다. 한국어를 선택 -> 되도록 '호환' 쪽을 택한다.

9. 다음은 마무리인 유닉스 암호 및 계정 설정 이다. 마무리 하면 마저 설치가 진행 될 것이다. (리눅스 설치는 하드디스크 설정부터 이미 시작 되었다.)

10. 설치가 완료되면 재부팅 후 그루브 (GRUB) 메뉴가 뜰텐데 먼저 윈도우 부터 정상 진입 가능한지 확인한다.

11. 다시 재부팅하여 리눅스로 진입해 본다.


     

동영상 가이드



   

 
 

Title :



Gnu Lotto Korea 6/45



Name :


glotto-k


Version :


0.5-5


Section & Category :



Games



Date :

    개발 완료 날짜 : 2016. 07. 30. (토)

    최초 개발 날짜 : Mon, 02 May 2016

Architecture :



64bit, 32bit



Description :


This program is make the number for 6/45 lotto of Republic of Korea.



본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6/45 로또를 위한 추천 번호를 의사난수를 활용해 출력해 주는 프로그램 입니다.






지원 운영체제 :



Linux-debian-Ubuntu : xenial, wily, vivid, trusty, precies


Depends (필요 & 의존성 패키지) :


psmisc, bc, fonts-nanum



Changes Log :  


    * Source upgrade.

( 소스 업그레이드 )



   * Source file reader processing added. ('/home/user/glsource2')

(소스 파일 인식 추가 '/home/user/glsource2 :미출현 번호 내림 순차)



주의 및 권고 사항 :


프로세스 사용율이 의외로 상당히 높기 때문에 듀얼코어 이상 사용을 권고하며 이중 실행시 프로세스 과부하가 걸릴수 있습니다.

 
라이선스 :


GPL-2.0+


제작자 :


C O S M O S Project.


Repository (PPA) & Install :


sudo apt-add-repository ppa:cosmosp2016/glotto-k

sudo apt update

sudo apt install glotto-k



활용 및 가이드 :
    

glotto-k --help


준비중



Source 다운로드:


준비중




먼저 빅데이터는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먼저 필자가 말하고 싶은 사항 한가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형태의 '반응형 데이터 프로세스'는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가 말하는 '반응형 데이터 프로세스'는 각개의 단일적 회사 네트워크에서 소비자의 성향을 인공지능 프로세서가 자동으로 분석하여 원하는 물품목록을 자사 내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비슷한 업무 처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인종지능 프로세스를 활용한 일종의 서비스와 같다.

하지만 '빅데이터' 라는 것은 경우가 좀 다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과연 왜 많은 칼럼 전문가들이 '빅 데이터'가 '빅 브라더스' 임을 말하고 경고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알고 있는가?

전자에서 말한 '반응형 데이터 프로세스' 라는 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다면 '빅 데이터'는 결코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왜 그럴까?

빅 데이터에서 말하는 '빅 (Big)'은 거시적이고 포괄적임을 말한다.

즉 소비자가 사용하는 회사 네트워크 서비스 이외의 수많은 다른 회사들의 네트워크 사용에서도 여러분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모으고 분석하는 것을 의미 한다.

즉 이것은 다양한 루트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포괄적인 무차별 수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서 당신은 반드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수많은 회사들의 네트워크 서비스의 데이터를 모아서 당신의 자료를 한데 모아서 분석하여 누군가 관찰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과연 괜찮은가?

알수 없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많은 거을 단 한번에 알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불쾌할 것이며 이것은 동시에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와 더불어 동시에 각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며 동시에 한 권력자 에게 그것을 귀속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즉 이 말은 '빅 데이터' 라는 두루뭉실한 말로 여러분의 개인정보를 무차별 수집하는 것을 정당화 시킴과 동시에 또 지금 그렇게 할 지도 모른다는 말이며

더 심각한 문제는 여러 회사들에서 한데 모아진 빅 데이터가 여러분의 정치적 성향, 사상적 성향, 성격 까지 파악하여 그것으로 인한 심각한 차별주의 마저 일으킬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궁금증을 가져봐야 할 것은

그러한 '빅 데이터'의 이익은 과연 누가 가져가는 것인가?

일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빅 데이터'를 쥐는 쪽은 자본력이 있는 쪽이다.


즉 '대기업'이 빅데이터를 쥐고 그 분석된 아이템들은 그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용 된다.

여기서 만약 여러분이 소상공업자 이거나 혹은 중소기업자 이거나 혹은 그 하부에 속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즉 전장과 비유 한다면 거대한 적에게 아군의 정보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는 신체에 칩을 직접 이식하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본 필자도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컴퓨터의 헛점과 위험성을 알고 있기에 사실 본인은 인공지능 드라이빙도 반대하는 편이다.

컴퓨터가 수행하는 모든 아키텍쳐의 흐름은 언제든 발생할수 있는 심각한 오류 가능성을 내장 하고 있다.


그리고 ...


우리 인간은 시스템이지 않다.


즉 완전히 사회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완사회적인 사고방식으로 발전하는 사회는 우리 인간을 더욱 추락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자유 주의를 본능적으로 관망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사람을 믿지 못해 철저히 사람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행태로 진화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흐름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있다.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에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뒤쳐질 것이다.


즉 더욱이 베리칩 등을 사용하여 대중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은 오히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유명인들의 서적을 읽어 보면 그들은 오히려 완사회적인 성향 보다는 반사회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인들은 훗날에 완전한 사회주의적인 사회가 도래하는 것에 대하여 위험 하다고 평균적으로 경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진실을 외면하고 편리적인 시스템을 추구하자는 앞날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을까 본 필자는 많이 두렵다.


다음은 현재 진행중인 신체 부착 방식의 칩의 진화와 개발 소식이다.


http://media.daum.net/digital/others/newsview?newsid=20160531090023464


현재 VR이 많은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것 같다.


본 필자가 '있는것 같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실질적인 대세가 아니라 단지 이슈화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큘러스와 카드보드가 출시한지 벌써 몇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심지어 마켓에선 만원대인 저가인 카드보드 VR까지 판매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얼마나 팔렸나는 것이다.


추산적으로 우선은 100만대 이상 정도는 국내에 팔렸을 것으로 추산되고 그중 95% 가까이의 사람들이 VR을 서랍장에 고이 모셔 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미 VR이 가진 한계와 단점을 이미 파악한 사람들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국내 게임 유저를 구분해야 하는데


우선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를 2000만명으로 가정하고 이를 두 분야로 나눠야 한다.


바로 간단한 게임만을 즐겨하는 '이지 유저'와


복잡한 게임이라도 어떻게라도 구축해서 즐기는 '하드유저'로 나뉘어 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비율은 무려 7:3 으로써 전자인 '이지 유저'가 그 비율이 훨씬더 높다.


PC게임와 VR게임 유저는 '하드 유저'에 포함된다.



하지만 또 여기서 특수한 게임을 즐기려는 유저가 '하드 유저' 에서도 2:8로 나누어 진다.


그렇다면 그 비율을 계산해 보자면 국내 인구수의 120만명이 실제 VR을 구입해 게임에 활용해 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하지만 벌써 100만을 밑도는 사용자들이 이미 VR을 체험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즉 현재 시장 에서는 당장에는 VR과 관련된 개발 상품에는 예상만큼 그 실적이 따라 주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상당히 많고 모든 흥망성쇄가 각자 자신에게만 있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시장분석이 매우 중요하고 거시적인 흐름을 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동력이 없는 돛단배가 바다 위를 향해 하려거든 반드시 바람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VR을 활용한 실제적인 게임 패키지 개발은 기존의 작업보다 상당히 까다로우며 VR없이 사용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개발 비용이나 시간에 있어서 타 게임보다 많은 자원을 활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미 그것을 시작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이왕 만드는 것 확실히 재미 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 이전에 중요한 작업은 VR기기 자체의 진화와 재개발일 것이다


안드로이드 내에서의 화면의 이중 분할 처리 없이도 VR기기가 자체 분할 처리를 한다면 기존의 많은 게임을 VR과 조이스틱으로 즐길수가 있게 된다.


필자는 이것에 대해 이미 포스팅 했었다.

  

http://cosmosproject2015.tistory.com/34




먼저 본 글은 저의 작은 생각에 불과 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먼저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거기 에다 광고 수익 효과를 누리겠다고 기획된 스크린도어는 그 발상만으로도 매우 혁신적 입니다.


2004년 처음 시작된 사업을 통해 시민들에게도 그 효과를 입증 받았으며 지금까지 추산적으로 많은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처음 기획했을 때 부터 뭔가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첫단추 부터 잘못 끼워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운영 방식이니 안전에 관한 투자 미흡이니를 따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핵심적으로 잘못 된것은 스크린도어 설치구조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현재 스크린 도어는 거의 정확할 정도로 승강장의 끝 선에 맞추어져 설치되어 있습니다.


즉 열차와 그 경계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그 폭에는 여유가 매우 부족 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시면 어떤 얘기인지 쉽게 알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상태 에서는 만약 정비 중이나 사람이 실수로 안쪽에 들어갔을 경우 열차가 들어오면 피할 공간이 없습니다.


이는 매우 간단히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더 안쪽인 승객 안전선에 맞추어 스크린 도어를 설치 한다면 만약 나오지 못했을 경우 몸을 옆으로 바짝 붙인다면 열차에 충분히 부딛히지 않을 공간을 확보 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재 이러한 구조로서는 만약 두명이 작업한다 할 지라도 두명 다 만약 안에 갇힌다면 두명다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한 명이 바깥에 있다 하더라도 스크린도어에 제어에 실패한다면 안쪽의 동료를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 막으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설치 구조 자체 부터가 안전하게 설계 되어야 맞는게 아닌가 하는 저의 생각 입니다.


처음 설계 부터 이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스크린 도어로서 시민의 안전을 조금 이나마 구할 수 있었지만 이를 정비하는 사람들을 우린 잃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보호 받아야할 시민 이었으며 현재의 스크린도어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C O S M O S  Project.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다면 이메일이나 댓글을 남겨 주십시오.


이메일 : cosmosproject15@gmail.com




요즈음 흔히들 많이 쓰는 언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관심 종자"


그런데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뉠수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과 잦은 혐호"


"관심과 사랑의 실제적 결핍"


타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요즈음 얼마나 있을까?


지금 시대는 타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쉽다.


심지어 대중매체나 미디어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을 대중화 이슈화 시키기도 한다.


이제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대중화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부작용은 상당한 시련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혐오와 증오는 실질적으로 타인을 해하는 범죄로 이어질 것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항상 햇갈리는 정신 분열적인 사회로 사회가 타락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체에선 아무리 끝없는 토론을 하더라도 진정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작정 적인 놀림과 혐오로써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아니면 그것이 나에게도 돌아올 것을 알기에 불안한가?


얼마전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명언을 듣게 되었다.


이 명언 보다 뛰어난 명언이 과연 있을까?




사랑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모든 오류는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1601 ~ 1658)




처음에 유승준이 잘못한 것은 맞다.


본인 스스로가 공인으로서 매체를 통해 군입대 선호를 표현 하고는 그 약속을 져버리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국방부와 행정부의 대처방식은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무조건적인 강제 입국 금지가 아니라도 병역법 위반으로 정식으로 조사를 받았어야 하는게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은 충분히 틀릴수도 있으며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며


또한 국방부의 판단이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유승준에게 간접적으로 우리 국가는 형별을 가한 것은 사실이고...


그 형벌이 시작된지 무려 14년... 1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겨 버렸다.


과연 이것은 타당한가...


만약 병역법을 일반인이 위반 했다면 몇년의 징역인가?


만약 그것이 2~3년 이라 치더라도 X2를 하더라도 그것보다 년수가 훨씬 더 많다.


그에게 그러한 그러한 형벌을 가하려거든 당시에 계산기를 정확하게 두들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유승준에 대한 형벌에 대한 그 시작과 끝의 조정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로부터 정권이 수 차례 바뀌었고 군부 인사권도 여러번 재편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로선 어느 기관도 이 문제를 피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유승준의 국내 재입국 허가의 결정궈(영구 입국 불허 해제)은 결정적으로 현재로서 현직 대통령에게 그 직권이 있을지도 모른다.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법도 계산을 한다.


그러한 발상으로 따지자면 입국불허 기간이 실제로서도 지나치게 길었기 때문에 유승준의 국내 '입국불허 해제'는 꿈 같은 이야기 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법은 그 나라의 권력에 좌지우지 된다.


나라가 있고 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변의 법칙 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각 기관의 의도를 살펴야 하는 법무부로서도 '입국불허 해제 기각' 이라는 결정도 마다 할 수 없다.


즉 법으로서 해결 하자면 상고로서 매우 길어지며 문제가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유승준은 반드시 대한민국에 들어가야 겠다고 결심한듯 하다.


물론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시스템에는 헛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어떻게는 언젠가는 대한민국에 그는 재입성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많은 기대를 안고 들어온 그가


혹여나 많이 달라지고 열정이 줄어들고 삭막하고 불신이 가득한 사회로 변모한 이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반대로 실망을 안고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유승준의 노래인 '열정'의 가사중...


"이 세상에 나의 너보다 소중한 것이란 것 내겐 있을순 없어.."


이 가사중 '너' 가 바로 현재 그의 마음과 결심에 있어서 '대한민국...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

 

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저의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물론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러한 생각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한가지 공통점을 말한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사회 부적응자들'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의견에 따라 정신질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사회 부적응과 자기 통제 부재에 대한 사이코 패스즘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는 것일까?


그러나 사회부적응은 결코 그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완벽한 사회 구성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



한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일... 즉 자기에게 진정으로 맞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일자리 부족을 외치기 전에 각각의 자리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학생들을 학업에만 열중 시키기 이전에 그들에게 각자가 사회에 맞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 해 본 적이 있는가?


성공하라고 돈 많이 벌라고 출세 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찰해 본 적이 있는가?



결국 우리 사회는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고 그러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좌절하고 있거나 엉뚱한 일을 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니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자아적인 스트레스가 발달하고 일이 잘 풀리지가 않고.. 결국 그 막중한 스트레스를 해소 하기 위헤 본능적으로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증오의 대상을 찾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시 말해 '묻지마 범죄'는 결코 길거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티니등 에서도 자신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반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심 보다는 증오를 표출하고 있다.


또는 사회적으로 유명인이든 유명인이 아니든 누군가가 실수를 저지르면 그 대상으로 하여금 증오를 표출해 낸다.


우리 모두는 현재 증오와 징악만 있을뿐 반드시 파악 해야 할 '리즌'을 생각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고 또 그 증오는 범죄와 증오를 낳고 계속 해서 이어질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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